주지스님 법문 입니다.   2007-07-10 (화) 08:40
김원식   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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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고의 즐거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이 지고 있는 짐에 대하여 설명하리라. 무엇을 짐이라 하는가?
자기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 짐이요. 자기 생각에 매달리는 것이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짐을 벗을 수가 없다.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무거운 짐을 버리고자 할지언정 새로운 짐을 만들지 말라.
짐을 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병이요.
짐을 벗어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반드시 애욕을 끊고
모든 법답지 못한 행동을 버려라.
그것들을 모두 버리면
다시는 윤회의 몸을 받지 않으리라.“

짐은 그대로 괴로움의 부피입니다. 그러므로 짐이 크면 괴로움도 큽니다.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다 짐꾼입니다.
저마다 벅찬 무게의 짐을 지고 어떤 사람은 평지길 을 가고 어떤 사람은 산길을 오르고
혹자는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2. 반드시 지녀야 할 도덕적 짐

짐도 그 내용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도덕적인 짐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적 규범입니다.
이를테면 부모를 모시는 것,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 부부간의 도를 지키는 것,
어른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 친구 사이에 믿음을 잃지 않는 것,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는 것 등등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도 다 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짐은 무겁다고 해서 아무 데나 버려서는 안 되는 짐입니다.  짐이 된다고 해서 부모를 버리는 것,
짐이 된다고 해서 형제를 버리는 것, 짐이 된다고 해서 남편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는 등등의 행위는 인륜을
부정하는 패륜이므로 법으로도 제재를 가하고 사회적으로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은 도덕적 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짐은 사람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기준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도덕성이 배제된다면 그건 그저 동물이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책임과 의무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벗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신성한 짐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3. 삶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버려야 할 소유와 집착의 짐

두 번째는 소유의 짐입니다. 소유는 무엇인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갖게 되면 그것은 그대로 짐이 됩니다.
소유는 필연적으로 속박을 가져 옵니다. 돈을 가지면 돈에 속박되고 권력을 가지면 권력에 속박됩니다.
모든 것은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소유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결혼을 해서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면 남자도 자연히 여자에게 소유되듯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갖게 되면
우리도 그것에 묵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로부터 여러 가지의 불편과 부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수유가 짐이 되는 원리입니다.
본시 소유라는 것은 욕망의 산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욕망에 의한 소유물은 다 짐이 됩니다.
가령 일억이라는 돈을 갖게 되면 이 돈에 다시
내 것’이라는 고정된 상표를 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돈을 가지고 있을 때는 누구에게 억울하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생각, 도둑맞지 않으려는 생각
이렇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전전긍긍합니다.
이미 탐욕이라는 손이 그것을 움켜쥐고 영원히
잃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상황을 맞아 그 돈을  쓰고 난 다음에는 ‘그때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할 걸’ 또는
그때 그 돈을 거기에 쓰지 않고 다른 쪽에 사용했더라면.....’
이런 식으로 갖가지 가정을 하면서 후회하고 자책하고 애달파 합니다. 돈은 이미 써버렸지만 마음 속 탐욕의 손은
아직도 그 돈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놓지 않는 한 그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소유의 짐은 없을수록 좋고 만일 있다면 빨리 벗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수고로운 것일 뿐,
아무런 보람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집착의 짐입니다. 집착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고정 불변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착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고정 불변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착은 무상법을 역행하는 마음입니다.  이른바 존재도 무상하고 마음도 무상하고 생각도 무상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기쁨도 무상하고 슬픔도 무상하고 나아가서 사랑도 미움도 고통까지도 무상합니다.
인간 세상에 무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덧없고 무상한테 집착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4.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사를 물 위에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물 위에 과거사를 기록하기 때문에 기록함과 동시에 그의 과거사는 흔적없이 지워져 버립니다.
물에는 글씨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과거사를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착할 과거사가 없으므로 현실에서 방해되거나 걸리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수용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 자유로운 토대가 됩니다.
이에 따라 물 위에 과거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현재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리석에 과거사를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과거사를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리석에다 기록해 놓았으므로 지워지지도 않고 또렷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집착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집착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와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나 미움 섭섭한 말 충격적인 사건 불행했던 시적의 일 등을 지금도 생생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과거의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는 오류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 때 바람을 피워 아내를 어렵게 했던 남편이 그 과오를 크게 뉘우치고 개심하여 아내 사랑에 한결 살뜰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렇게 변화된 현재의 남편을 보지 않고 여전히 과거에 바람피우던 남편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에게 보인 현재의 진실이고 아내의 생각 속에 있는 과거의 남편은 서로 상충되어
결국 남편의 진심은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과거사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불행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물 위에 기록해야 할 내용과 대리석에 기록해야 할 내용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럼 먼저 대리석에 기록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대리석에 기록해야 할 내용은 사람으로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사람으로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첫 번째는 은혜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돈 보따리를 잃을지언정 마음속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약속입니다. 약속은 사람이란 품위를 담보한 예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더 첨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누구나 공통적인 대리석에 기록해야 할 내용은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은 물위에 기록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그것은 빨리 잊어야 할 내용이어야 맞겠습니다.
예컨대 나에게 상처가 되는 것들 나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들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억압하는 것들 나에게 불행을 느끼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외에 남을 향해 가졌던 적대감 미음 원망 부정적인 선입견 등 많습니다만
어떻든 이런 것들은 나를 어둡게 하고 그늘지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물 위에 기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신 것은 인간사 모두를 물 위에 기록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삶에서 겪는 것들을 물 위에 기록하면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에도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면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짐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 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세 가지 중에 도덕적인 짐은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최대한 노력하여 끝까지 지고 가야할 짐이지만 나머지 두 가지인
소유의 짐과 집착의 짐은 삶의 건강성을 위하여 반드시 버려야 할  짐입니다.

5. 육체적 집착과 생각에 매달리는 마음의 집

이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짐 쪽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눈길을 돌려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를 짐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즉 육체에 집착하는 것과 생각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대반열반경에는 육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육신은 아무리 보석을 걸고 향과 꽃으로 꾸민다 해도 그 속에는 깨끗하지 못한 똥과 오줌이 가득하다.
중생이 그 육신을 보호하고 아끼고 미혹하여 바르게 보지 못함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재에 덮인 불씨를 밟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육신을 멀리하여 물들거나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은 건강을 위하여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꾸미고 장엄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설사 값진 보석으로 휘감아 놓는다 해도 육신은 보석이 될 수 없고 꽃과 향 속에 파묻어도 육신은 꽃 향과 같을 수 없습니다.
부딪히면 터지고 떨어지면 부러지고 깔리면 으깨지고 무리하면 병나고 굶으면 맥을 못 추는 육신,
이 육신은 너무나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육신을 오래 보전하려면 관리를 철저히 해서 보호해야 할 때와 휴식해야 할 때와 영양 공급할 때를 잘 지켜야할 것입니다.
육신에게 정작 필요한 이런 것을 소홀히 하면서 단순한 집착만 하게 되면 그로 인해 악마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육신에 집착하면 악마의 마음대로 되고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악마의 마음대로 되고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악마가 하고자 하는 대로 되며 악마에게 구속되어 악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착을 경계하면서 두 가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는 육신에 집착하면 짐이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육신에 집착하면 악마의 노예가 되어 파멸을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로 생각이란 덧없는 것입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덧없는 생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덧없는 생각들을 마땅히 끊어 버려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이 넉넉하고 안락하리라. 
무엇이 덧없는 생각인가? 육신에 매달리는 마음이 덧없는 생각이다.  좋고 나쁨의 느낌에 매달리는 마음이 덧없는 생각이다. 
무엇을 보고 느낀 자기의 마음이 덧없는 생각이다.
자신의 감각에 매달리는 마음이 덧없는 생각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분별하는 마음이 덧없는 생각이다.

우리가 객관세계를 대하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이 있고 사물을 보게 되면 또 필연적으로 그 사물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 느낌이 생각을 일으키는 인자입니다.  따라서 감각기관이 온전한 사람은 어디서나 객관적인 사물을 접하므로 그에 따른 생각 또한 끊임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에 대해서는 반복하면서 잊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 생각을 점진적으로 심화하고 나아가서는 그 생각을 다른 일들과 연결하면서 확대하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 그 생각은 다른 상념들과 충돌을 가져오고 또 순수한 생각들을 억압하여 모든 생각의 폭을 좁혀서 옹졸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고집불통이나 막힌 사람 또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매달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자기 생각에 매달린 사람은 그로 인한 부자유와 속박 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을 짓누르는 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두 가지 짐, 즉 육체에 집착하는 짐과 생각에 매달리는 짐은 부피가 있는 물질의 짐이 아니라 마음의 짐입니다.

6. 짧은 기쁨 주고 긴 괴로움 앓게 하는 탐욕을 버려야

그러면 이러한 짐은 왜 갖게 되는가? 부처님께서는 그 이유를 탐욕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탐욕은 애착을 갖게 하고 애착은 다시 집착을 낳고 생각에 매달리게 하며 마음에 두 가지 짐을 지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탐욕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한 누구라도 짐은 벗지 못할 것입니다.  요컨대 짐의 뿌리는 탐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의 빛과 그림자를 잘 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아함경에서 탐욕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즐거움과 재앙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탐하고 마음에 드는 소리를 탐하고 마음에 드는 냄새를 탐하고
마음에 드는 맛을 탐하고 마음에 드는 감촉을 탐합니다.
그리고 그 탐욕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흡족해합니다.
이것이 탐욕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탐욕은 우리를 잠시 웃게 하고 오래 울게 합니다.
섬광 같은 짧은 기쁨을 주고 강줄기 같은 긴 괴로움을 앓게 하는 것이 탐욕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마땅히 버리고 멀리 해야 할 대상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짐의 뿌리가 탐욕이므로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멀리하는 것은 짐을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마음에 짐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탐욕을 버리고 멀리해야 합니다.

7. 짐을 벗어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

부처님께서는 “항상 짐을 버리고자 할지언정 새로운 짐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짐인 줄 모르고 짊어진 짐은 즉시 내려놓고 무엇이 짐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후부터는
새로운 짐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새로운 짐을 만들지 않는 것 앞뒤 좌우에서 경쟁하듯
새로운 짐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도 그곳에서 절대로 새로운 짐을 만들지 않는 것 이 하나만 결연히 지켜내도
우리는 절반의 수행을 이룬 셈이 됩니다.
불자는 지고 있는 짐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짐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이며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짐을 지는 것은 세상 사람의 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탐욕을 추종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어나는 죄악이나 재앙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정상이 아닌 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법을 만난 사람은 짐을 지지 않습니다.
짐을 벗어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부처님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짐을 갖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이 짐이라는 것을 깨우쳐주고 그 짐을 벗어 최고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도 외면하면 그는 짐을 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짐을 지었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는 세상에 병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부처님의 금언을 따라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면 최고의 즐거움을 얻게 되고 부처님 말씀을 외면하면 재앙과 고총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재앙과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법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도덕적인 짐에 대해서 꾀를 부려서는 안 되지만
탐욕에 의한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꾀를 빌리는 것이 보다 현명한 길입니다.
곧 일상의 마음이나 생각을 짓누르는 짐이 있다고 생각되면 지체없이 소금을 등에 진 당나귀가 그 무게를 덜기 위해
강물에 빠지듯이 물에 빠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소금처럼 녹아서 가벼워지거나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짐이 무거워 빠질 물은 소양강 물도 아니고 한강 물도 아니고 낙동강 물도 아닌 불교 수행의 물이란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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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tr 16-10-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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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정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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